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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인디언 인형(Ten Little Indians, 1987), 범죄, 미스터리

by 모락모~락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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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개의 인디언 인형' 줄거리

영국의 외딴 산속 저택. 서로 전혀 모르는 10명의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주인으로부터 초대장을 받고 이 저택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저택 주인이라고 알려진 '미스터 오웬(Mr. U.N. Owen)'에 의해 초대되었지만, 정작 도착한 저택에는 주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착한 이들은 의사, 판사, 군인, 가정교사, 경찰관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첫날 밤, 저녁 식사 후 저택의 응접실에서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음성은 각자에게 과거에 저지른 살인 혐의를 낱낱이 고발하며, 이곳에 모인 이유가 '자신이 법망을 피해온 죄를 심판받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처음엔 이를 장난이나 실수로 치부하지만, 곧 한 명씩 정체불명의 방법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긴장과 공포가 고조됩니다. 저택에는 '10개의 인디언 인형(Ten Little Indians)'이라는 제목의 동요가 벽에 액자처럼 걸려 있고, 식탁 위에도 같은 수의 인형이 놓여 있습니다. 이 동요는 인디언 소년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동요의 내용대로 사람들도 하나둘씩 죽어나가고, 죽을 때마다 식탁 위 인형도 하나씩 사라집니다. 살인이 계속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점차 극도의 공포와 편집증에 빠져들게 됩니다. 죽음의 순서는 동요의 가사와 정확히 일치하며, 모두가 이 저택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절망에 빠집니다. 의심과 추리는 계속되지만, 살인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결국 마지막 생존자 한 명만 남게 되는데,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시청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실제로 이 저택의 주인이자 살인자는 초기에 사망한 것처럼 위장한 인물로, 모든 계획은 철저히 치밀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그는 정의를 신봉하는 판사였으며, 법의 심판을 피한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심판하려 한 것입니다. 이야기는 범인이 남긴 고백을 통해 마무리되며, 한 편의 비극적인 복수극이자 심리 스릴러로 끝을 맺습니다.

2. 시대적 배경

'10개의 인디언 인형'은 고전 추리 소설의 전통을 잇는 영화로서, 전자기기의 발전이나 현대적 수사 기법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고립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무대는 고립된 산악지대의 고풍스러운 저택이며, 이곳에는 전화선도 끊겨 있고 외부와의 연락 수단도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기차와 자동차를 이용해 저택에 도착하고, 이후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끊기면서 극한의 폐쇄 공간 속 심리극이 시작됩니다. 등장인물들의 복장은 포멀한 정장, 모자, 드레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여성들의 복식은 1930~40년대 유럽 상류층 사회의 전형적인 패션을 보여줍니다. 남성들은 군복이나 법조인 특유의 고전적인 복장을 착용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당시의 계층사회 분위기와 엄격한 사회 질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언급되는 사건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또는 그 직후로 추정되는 사건들이며, 전쟁, 식민지 통치, 군사 작전, 법의 사각지대 등 영국 제국주의 말기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등장인물들이 법망을 피해온 과거를 가졌음에도 처벌받지 않은 점은 당시 사회의 불완전한 정의 시스템과 귀족주의적 사고방식, 계층 간 불평등을 암시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전자기기나 현대적 기술이 전무한 시대 설정을 통해 인간의 심리, 죄의식, 본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이 외부의 개입 없이 점점 서로를 의심하고, 고립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은 20세기 중반, 특히 전후 유럽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와 불신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배경은 원작 소설이 발표된 1939년의 시대 정서를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영화의 폐쇄성과 긴장감을 더욱 극대화시켜줍니다.

3. 총평

영화 '10개의 인디언 인형'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불후의 명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네 번째 영화화 작품으로, 원작의 긴장감과 폐쇄된 공간에서의 심리적 압박감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해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원작이 지닌 서스펜스 구조와 심리 스릴러적 요소를 고전적인 방식으로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고립된 공간, 각자의 과거에 죄를 지닌 인물들, 그리고 하나씩 사라지는 사람들과 점점 고조되는 불안감은 고전 추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무대극처럼 제한된 공간과 대사 중심의 전개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전 버전들과 비교했을 때 특출난 연출력이나 새로움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전달은 무난하지만, 1980년대 후반의 제작기술과 연출 감각이 현대 관객에게는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살인의 수법이나 트릭 자체는 원작의 것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원작이나 이전 영화판을 접한 관객에게는 반전의 충격이 다소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고전 추리극의 매력, 즉 '밀실 살인', '심리 추적', '불안한 동맹과 의심'의 구조를 안정적으로 그려내며, 추리극 팬들에게는 단단한 정통 스타일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영화는 인간의 죄의식, 도덕적 심판,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 철학적 여운도 남깁니다. 고전 추리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은 폐쇄적 심리극이며 새로움은 부족하나, 원작의 충실한 재현과 심리적 긴장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계를 충실히 음미하고 싶은 관객에게 적합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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