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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그 아이는 귀족(Aristocrats, 2021), 드라마

by 모락모~락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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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아이는 귀족' 줄거리

주인공 하나코(수가사와 마키 분)는 도쿄의 유복한 가문에서 자란 전형적인 '귀족'입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정해진 규범 안에서 살아왔으며, 정략결혼을 당연히 여깁니다. 27세가 된 그녀는 갑작스럽게 약혼자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혼란에 빠집니다. 인생의 방향을 잃은 그녀는 집안의 권유로 조건 좋은 남성과의 맞선을 이어가며 새로운 짝을 찾고 그러던 중 도쿄대 출신의 엘리트 남성 고이치와 만나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됩니다. 반면, 또 다른 여성 마키(미즈카와 아사미 분)는 니가타 출신의 지방 출신자이자 자수성가형 인물입니다. 그녀는 도쿄대에 진학해 로펌에서 일하며,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그녀 또한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합니다. 학벌과 실력만으로는 상류층 문턱을 넘을 수 없음을 체감하며, 어느새 시스템 안에 갇혀 있음에 절망합니다. 마키는 고이치와 과거 연인이었던 인물로, 하나코와는 보이지 않는 실로 얽혀 있습니다. 결국 하나코는 고이치와의 결혼 생활에서도 공허함을 느끼고 남편의 삶과 가치관에 점점 동화되기보다는 이질감을 느끼게 되며, 자신의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우연히 마키의 존재를 알게 된 하나코는 그녀와 조우하고, 두 여성은 서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둘 중 누구도 이상적인 정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두 여성 모두 자신이 처한 사회적 지위와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하나코는 점차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회복해 나가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관객에게 울림을 줍니다.

2. 배경

영화의 주요 무대는 일본의 수도 도쿄.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경제·문화의 중심지인 도쿄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기회의 도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귀족'은 이 도시의 또 다른 면모, 즉 신분 차이와 계급 구조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작동하는 현실을 그립니다. 미나토구, 아자부, 아오야마 등 전통적인 상류층 지역이 하나코의 생활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이곳은 ‘도쿄 안의 또 다른 나라’처럼 묘사되며, 혈연, 학벌, 결혼 등을 통해 신분이 유지되고 세습되는 곳입니다. 반면, 마키가 살았던 지방(니가타)과 그녀가 도쿄에서 살아가는 공간은 훨씬 현실적이고 치열합니다. 하숙집, 좁은 오피스텔, 바쁜 거리와 지하철, 로펌 같은 공간들은 그녀의 계급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하나코와 마키는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도쿄’를 살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경제적 차이가 아니라, 태어난 곳, 교육, 가치관, 인간관계 등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인 신분 격차로 드러납니다. 하나코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 사는 상류층 여성이고 태어나면서부터 이어진 가문과 인맥, 맞선과 결혼을 통한 ‘안정된 삶’이 그녀의 세계입니다. 마키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을 추구하지만, 도쿄 상류층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도쿄대 출신임에도 ‘출신 지역’이나 ‘가문’이라는 기준에서 늘 평가받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단지 갈등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여성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연대와 변화의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도쿄는 그만큼 잔혹한 도시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각과 선택의 계기가 되는 공간으로 작용합니다.

3. 총평

'그 아이는 귀족'은 일본 현대 사회의 계급 구조와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단정한 드라마처럼 흐르지만, 그 안에는 강한 비판 의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두 주인공 하나코와 마키는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면서도 각각의 위치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영화는 그들의 삶을 단순한 성공담이나 희생담으로 소비하지 않고, 복잡한 감정과 현실을 담담하게 따라갑니다. 일본 영화에서 보기 드문 ‘계급’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것을 과하게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아하고 정적인 연출 속에 구조적인 차별과 사회적 벽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여성이 갈등이나 경쟁이 아닌 ‘이해와 공감’을 통해 연결되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는 기존의 여성 서사에서 자주 보였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공간의 배치(상류층 저택과 좁은 원룸), 인물의 의상, 카메라 앵글 등은 인물의 삶과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도쿄라는 도시가 가진 이중성도 영상미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극적인 갈등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일상의 누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자극적인 서사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아이는 귀족'은 일본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 구조와 그 속에 놓인 여성의 선택지를 정제된 방식으로 풀어낸 품격 있는 사회 드라마입니다. 현실을 바꾸는 영웅서사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잔잔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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