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퍼펙트 데이즈' 줄거리
도쿄 시부야,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살아가는 중년 남성 히라야마는 단출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이발을 하고, 복근 운동을 한 뒤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향합니다. 그의 일은 시부야 전역의 공공화장실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며, 매일 같은 루틴이지만 그는 정성스럽고 성실하게 임합니다.
히라야마는 점심으로 작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고, 식사 후에는 근처 공원에서 앉아 책을 읽거나 주변을 관찰합니다. 그의 생활은 고요하면서도 충만해 보입니다. 특히 카세트테이프와 워크맨으로 듣는 70~80년대의 올드 팝 음악(루 리드, 패티 스미스, 오티스 레딩 등)이 그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하지만 이 단조로운 삶은, 한편으론 과거의 깊은 슬픔과 단절 위에 세워진 것임을 점차 드러냅니다.
동료 청소부 타카시는 히라야마보다 젊고 다소 덤벙대지만, 그와는 좋은 동료 관계입니다. 어느 날 히라야마의 조카인 나츠키가 갑자기 집을 찾아오며 그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나츠키는 삼촌인 히라야마와 며칠을 지내며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관찰합니다. 조카와의 대화를 통해, 히라야마가 과거에 가족이나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암시가 나타납니다. 히라야마는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풍경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창밖의 나무 그림자, 골목의 고요함 등을 유심히 바라보며 일상을 음미합니다.
2. 배경
영화는 스마트폰, 최신 자동차, 디지털 광고판이 넘치는 초현대적 대도시 도쿄에서 벌어지지만, 주인공 히라야마는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고수합니다. 그는 카세트테이프와 워크맨, 종이책,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며, 현대 문명의 속도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배치는 현대 일본 사회 속에서 ‘속도의 문화’에 지친 이들에게 '느린 삶'과 '관조적인 시선'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여러 공중화장실은 실제 도쿄 시부야구에서 일본의 건축 거장들과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사회 디자인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모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을 목표로, 기능성과 미학을 조화시킨 공간을 도입했습니다.
히라야마는 이 화장실들을 청소하는 일을 하며,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조용히 존엄을 지켜나가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설정은 일과 존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라는 메시지를 더욱 깊게 전달합니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 고립된 개인, 가족 해체, 세대 간 단절,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은둔형 삶과 같은 사회적 이슈들이 히라야마의 인물상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과거의 사회적 지위나 관계를 버리고 자신만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는 쓸쓸함과 외로움도 배어 있습니다. 비록 배경은 현대 도쿄이지만, 히라야마의 삶은 마치 옛 선비나 수도자, 또는 ‘와비사비(侘寂)’ 정신을 따르는 듯한 철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는 물질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작고 단순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본적 미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3. 총평
'퍼펙트 데이즈'는 거창한 이야기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 일상의 반복, 고요한 삶, 그리고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입니다. 주연 배우 야쿠쇼 코지는 말이 거의 없는 캐릭터 ‘히라야마’를 표정, 몸짓, 눈빛만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는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하며, 그는 이 역할로 2023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독일 거장 감독 빔 벤더스는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되, 작고 평범한 일상에 카메라를 고정시킵니다. ‘보통의 하루’가 반복되는 구성 속에 세심한 시선을 담아, 삶의 조각들을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물질적 풍요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자연과 음악, 루틴, 사색의 시간을 통해 만족을 얻는 주인공은 오늘날의 많은 이들에게 삶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영화에 흐르는 **올드 팝 음악(루 리드, 오티스 레딩 등)**은 히라야마의 내면을 보여주는 창구로 기능하며, 관객의 감정에도 깊은 공명을 일으킵니다. 자연광, 나뭇잎 그림자, 소리 없는 순간들 등 미장센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조용히 흐르지만 오래 남는다. '퍼펙트 데이즈'는 우리의 일상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영화다."
이 영화는 서사보다는 감성, 대사보다는 침묵, 행동보다는 관조를 통해 관객과 교감합니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지나쳐버리는 삶의 조각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정신적 쉼표가 필요한 이들에게 꼭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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