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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피아노(The Piano, 1993), 드라마, 멜로/로맨스

by 모락모~락 2025.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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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아노' 줄거리

에이다 맥그래스는 어린 시절 어떤 이유로 말을 하지 않게 된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피아노로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그녀에겐 딸 플로라가 있으며, 남편 없이 딸과 함께 살아가던 중 아버지의 뜻에 따라 뉴질랜드의 개척지로 시집을 가게 됩니다. 상대는 영국에서 온 이민자 앨리스터 스튜어트입니다. 에이다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인 피아노와 함께 뉴질랜드로 갑니다. 에이다와 플로라는 험난한 항해 끝에 뉴질랜드 해안에 도착하지만, 앨리스터는 피아노를 해안가에 그대로 두고 그녀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피아노를 가져가려면 힘들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피아노 없이 생활해야 하는 에이다는 침묵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그녀의 감정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건 플로라뿐입니다.

 

앨리스터의 이웃이자 동업자인 조지 베인스는 마오리족과 가까이 지내며 현지 문화에 익숙한 인물입니다. 그는 해변에 버려진 피아노를 보고 그것에 매혹됩니다. 조지는 에이다의 피아노를 앨리스터에게서 땅과 맞바꾸는 거래를 합니다. 그리고 피아노를 가져간 뒤, 에이다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고 싶다면, 내가 시키는 걸 할 때마다 건반 한 칸씩 되돌려주겠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처음엔 단순한 접촉(손 만지기 등)이지만, 점차 육체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되찾기 위해 조지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점점 조지에게 끌리게 되고, 두 사람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반면, 남편 앨리스터는 아내가 점점 자신을 외면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그는 플로라를 통해 아내의 행동을 감시하고, 에이다가 조지에게 보내는 사랑의 쪽지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됩니다.

 

앨리스터는 분노에 휩싸여 에이다의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버립니다. 이는 그녀가 다시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또한 조지에게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조지는 에이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에이다 역시 조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쳐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떠나는 날, 에이다는 피아노를 배에 실었다가 갑자기 그것을 바다에 버리자고 합니다. 피아노와 함께 물에 잠기려는 듯 깊이 가라앉지만, 마지막 순간에 살아남고 떠오릅니다. 이후 에이다는 조지와 함께 정착하며 새 삶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의사소통을 위해 말 대신 글을 배우고, 자신을 억압했던 침묵과 과거를 극복해 나갑니다. 피아노는 바다 속에 잠겼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존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2. 시대적 배경

영화 '피아노'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 약 1850년대 뉴질랜드입니다. 이 시기는 유럽 이주민들이 뉴질랜드로 정착하던 식민지 개척 시대입니다. 영화는 이 시기의 사회적, 문화적, 젠더적 갈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체결 이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영화 속 무대는 유럽 이주민들이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공존하거나 충돌하며 살아가던 초기 정착촌입니다. 극 중 남성 캐릭터들, 특히 앨리스터와 조지는 영국인 또는 유럽계 정착민이며, 땅을 사고 팔며 원주민 땅을 개간합니다.

 

당시 여성은 사회적, 법적으로 남성의 소유물에 가까운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에이다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혼 상대가 정해지며, 마치 ‘거래되는 물건’처럼 타지로 보내집니다. 그녀가 말 대신 피아노로 감정을 표현하는 설정은,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하던 현실을 상징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조지 베인스는 마오리 문신을 몸에 새기고,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려는 유럽인이지만 여전히 내면엔 제국주의적 태도가 남아 있습니다. 원주민 마오리족은 극 중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배경이 아닌 식민지의 현실을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피아노는 당시 상류층 여성들의 교양으로 여겨졌으며, 에이다에게는 감정의 도구이자 유일한 자아 표현 수단입니다. 남편 앨리스터는 피아노를 해안에 버리고, 그녀가 연주하지 못하게 손가락을 자르는 등 예술과 감정 표현 자체를 억압합니다. 이는 당시 여성의 지성과 감성을 억누르려는 사회의 시선을 대변합니다.

 

3. 총평

 

주인공 에이다는 말하지 못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침묵 속에서도 자신만의 욕망과 감정을 끝까지 지켜냅니다. 이는 19세기 여성의 억압된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자기 주체성을 향한 투쟁을 매우 상징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자연 풍광, 어두운 색조, 원시적인 풍경과 인물의 내면을 시적으로 연결해 뉴질랜드의 우울하고 거친 자연은, 에이다의 감정 상태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마이클 니만(Michael Nyman)'의 피아노 음악은 감정을 극대화하며, 대사 없이도 인물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피아노라는 오브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닌, 에이다의 정체성과 감정, 욕망, 억압과 해방을 상징합니다.

 

배우 홀리 헌터는 실제 피아노 연주를 하며 말 없는 연기로도 깊은 감정선을 표현했고, 그 결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안나 파킨(플로라 역)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최연소 수상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오리 원주민은 배경처럼 처리되어 식민지 시대의 원주민 관점이 미흡하게 다뤄졌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피아노'는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닌, 여성의 욕망과 억압, 자아 찾기, 그리고 식민주의적 배경 속에서의 해방을 깊이 있게 그려낸 감성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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