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는 프랑스의 한 TV문학 프로그램 진행자. 지적인 아내 안(쥘리에트 비노쉬)과 함께 파리에 있는 단정한 집에서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간다. 둘은 아들 피에르와 함께 조용하고 안락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의 집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디오테이프 한 통이 도착한다. 테이프에는 이들의 집을 멀리서 촬영한 영상이 담겨 있다. 마치 누군가가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처음엔 단순한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테이프는 계속해서 배달되고, 점점 더 불길한 메시지와 과거를 암시하는 낙서들이 함께 도착하기 시작한다. 불안은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조르주는 테이프의 정체를 추적하다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과거의 기억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린 시절, 그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 알제리 소년 ‘마지드’가 그의 뇌리를 스친다. 조르주는 의심을 품고 마지드를 찾아 나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 미묘하고 복잡하게 얽히며, 가족 간의 신뢰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편, 안은 남편이 숨기고 있는 과거와 그로 인한 이상한 행동들에 점점 불신을 느끼며, 조르주의 침묵 속에 도사린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조르주는 자신이 억누르고 감춰왔던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그 과거는 결코 조용히 묻힐 수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은 단순한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라, 그들 삶 속 깊숙이 숨어 있던 죄책감, 부채감, 책임이라는 무형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 그 과거를 집요하게 들춰낸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2005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히든(Caché)*은 이런 질문을 품고 시작된다.
겉보기엔 평온한 일상, 성공한 방송인 조르주와 지적인 아내 안(쥘리에트 비노쉬)의 삶은 어느 날 집 앞에 도착한 의문의 비디오테이프 한 통으로 균열을 맞는다.
평범한 집 앞에 놓인 비디오테이프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 가족을 촬영하고 있는 걸까? 비디오는 조르주의 집을 멀리서 지켜보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단지 ‘지켜보고 있다’는 암시만 줄 뿐. 처음엔 단순한 장난이라 여겼지만, 테이프는 계속되고, 내용은 점점 더 섬뜩해진다. 과거의 기억을 자극하는 낙서들, 의미심장한 장소들... 누군가는 이 가족의 과거를 알고 있다.
심리 스릴러 그 이상의 무언가
히든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하네케 감독 특유의 냉정하고 정제된 연출은 관객을 스크린 앞에서 '목격자'로 만든다.
누가 범인인지 추리하게 하기보다는, 인물의 심리적 해체 과정, 그리고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조르주의 기억 속 어두운 과거, 알제리 이민자 소년 마지드와의 연결고리는 프랑스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건드린다.
쥘리에트 비노쉬, 침묵 속의 격정
안 역할의 쥘리에트 비노쉬는 이 영화의 정서적 앵커 역할을 한다. 남편이 점점 비밀 속으로 침잠할수록, 그녀는 눈빛과 침묵으로 위태로운 현실을 붙잡으려 한다. 그녀의 연기는 차분하지만 강렬하고, 그 이면에 도사린 감정의 폭발은 보는 이에게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결말은 끝이 아니다
많은 관객이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도대체 누가 비디오를 보냈는가? 하지만 히든은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완전한 해답은 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라면 어떤 진실을 감출 것인가", "그것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묻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한 이유다. 히든은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하지만 동시에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쥘리에트 비노쉬의 섬세한 감정 연기, 하네케 감독의 치밀한 연출,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감시자’와 ‘공모자’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게 만드는 시선 구조는 지금 봐도 탁월하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깊숙한 곳에 ‘히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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