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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모퉁이(No Surprise, 2022), 드라마

by 모락모~락 2025.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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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퉁이' 줄거리

영화과 동창생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입니다. 서울의 어느 조용한 골목 끝, 단골 술집 ‘개미집’에 성원, 중순, 병수가 차례로 등장하는데 모두 30대 중반이 된 이들은 예전처럼 농담도 주고받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어색함과 거리감이 있습니다. 성원은 여전히 독립영화를 찍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중순은 영상 일을 접고 일반 회사에 다닙니다. 병수는 오랜만에 나타난, 조금은 낯설어진 친구입니다.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단편 영화 작업, 교수와의 갈등, 학창 시절에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처음엔 회상과 웃음이 오가지만, 곧 서로의 삶에 대한 평가와 미묘한 질투가 대화 사이로 흘러나온다. 특히 영화계에 남은 성원과 그렇지 않은 중순 사이에는 각자의 선택에 대한 묵은 감정이 배어 있습니다. 병수는 그런 대화 속에서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중재합니다.

 

술자리 도중, 병수가 문득 자신이 오랫동안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이 만남을 오래 기다렸다는 말을 꺼냅니다. 성원과 중순은 당황하지만, 그동안 병수가 겪었을 아픔에 귀를 기울입니다. 병수는 대화 중 자신이 과거에 찍었던 영화와, 거기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담담히 꺼냅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지고, 다음 날 병수의 자살 소식이 전해집니다.

 

성원과 중순은 병수의 빈소에서 다시 만나고, 어제의 대화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들은 병수의 죽음을 단순한 충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누군가는 그 죽음이 예견됐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더 많은 말을 나눴어야 했다고 자책합니다. 그 후, 성원은 병수와 함께 찍었던 옛 영화 필름을 꺼내어 다시 보며,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을 정리합니다. 중순도 다시금 영상 작업을 고민하게 되며, 병수의 죽음이 두 사람의 삶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킵니다.

 

2. 배경

영화 '모퉁이'의 배경은 서울의 오래된 골목과 술집, 그리고 인물들의 일상적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삶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반영합니다. 영화의 주 무대는 낡은 건물과 좁은 길이 어우러진 서울의 오래된 주거지 골목입니다. 이 골목은 한때 인물들이 자주 모였던 공간이자, 다시 재회하는 장소로 기능합니다.

 

‘모퉁이’는 도시의 끝자락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에게는 기억의 시작이자 감정의 경계를 상징합니다. 술집 ‘개미집’은 세 주인공이 모이는 곳으로, 학생 시절의 추억과 아련함이 깃든 장소입니다. 과거의 우정과 현재의 소외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서로의 변화를 직접 마주하는 상징적 무대입니다. 옛 작업실·자취방은  과거 단편영화를 함께 만들던 작업 공간이 회상으로 등장합니다. 지금은 흩어졌지만, 그 시절의 에너지와 순수함이 남아 있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스마트폰, SNS, 배달 문화 등 현대적인 요소들이 가끔 언급되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에 집중합니다. 현실적 어려움(경제적 불안정, 직업의 불확실성 등)이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대사에 녹아 있으며, 청춘이 지나고 30대에 접어든 세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좌절이 시대적 정서를 반영합니다. 직선으로 달려가던 인생이 굽어지는 지점,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나는 전환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이 ‘모퉁이’라는 핵심입니다.

 

3. 총평

'모퉁이'는 화려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전개 없이도 깊은 감정의 울림과 철학적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며 마주하게 되는 우연, 상실, 관계의 균열을 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관객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영화입니다. 인물 간의 대화는 무심한 듯 흘러가지만, 그 안엔 수년간 묻혀 있던 후회, 미련, 자책이 섬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감정을 억제한 연기와 느린 호흡이 오히려 현실성을 높입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실제 영화과 동기라는 점에서, 작품 전반에 진심과 현실감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표정에는 실제 우정과 상처의 기록이 녹아 있습니다. 영화 제목인 ‘모퉁이’처럼, 평범한 골목과 술집이 삶의 전환점이자 회귀의 장소로 의미 있게 쓰입니다. 소소한 공간들이 인물의 감정선과 맞물려 서사를 조밀하게 지탱합니다.

 

‘모퉁이’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닌 삶의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인물들은 모퉁이를 돌아서 다시 만났고, 또다시 헤어집니다. 병수의 죽음은 삶 속에서 맞이하는 작은 충격, 혹은 예고 없는 순간의 상실이며, 이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향을 다시 성찰하게 됩니다. 고경표는 이 영화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실제 동기들이 서로를 연기하며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흐리는 장면 속 상징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의 등장은 일종의 거울 같은 역할로, 관객에게도 모퉁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자문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영화 '모퉁이'는 영화과 동창들이 오랜만에 재회하며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 과정을 통해 우정, 상실, 삶의 방향에 대한 내면적 성찰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술자리 대화처럼 보이지만, 등장인물 각각의 삶의 균열과 감정의 갈등이 서서히 드러나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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