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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비 포 더 레인(Before The Rain, 1995), 멜로/로맨스, 드라마

by 모락모~락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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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 포 더 레인' 줄거리

영화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뉘며, 각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Words (말들)

배경: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 근교의 수도원과 시골

젊은 수도사 키르(키릴) 는 수도원에 머무르며 침묵 수행 중이다. 어느 날, 알바니아계 무슬림 소녀 자미라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기게 되고, 키르의 방에 숨어든다. 키르는 그녀를 숨겨주며 둘 사이에 감정이 생긴다. 그러나 그녀가 발각되고, 키르는 자미라를 구하려다 그녀의 오빠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에피소드는 민족 간 갈등, 종교, 순수한 사랑의 파괴를 보여준다.


2. Faces (얼굴들)

배경: 런던

런던의 사진 편집자 은 결혼 생활이 흔들리는 가운데, 전쟁 사진가인 알렉산더와 관계를 맺고 있다. 알렉산더는 내전 중인 고향(마케도니아)에서 돌아왔고, 잔혹한 사진 때문에 괴로워한다. 앤은 임신했지만 누구의 아이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일상의 폭력, 혼란스러운 감정, 도시의 무관심 속에서 앤은 방향을 잃는다. 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인종 간 충돌(예: 레스토랑에서의 총격 사건)은 개인과 전쟁이 무관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3. Pictures (사진들)

배경: 마케도니아 시골 마을

알렉산더는 전쟁 사진가의 삶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서는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간의 갈등이 심각해져 있다. 마을에서 자란 알렉산더는 어릴 적 친구와 그의 알바니아계 딸인 자미라를 둘러싼 갈등에 휘말린다. 자미라가 위험에 처하자, 알렉산더는 그녀를 구하려 하지만 결국 살해당한다. 그의 죽음은 과거 키르의 죽음과 겹쳐지며, 자미라의 모습도 반복되어 관객에게 시간의 순환과 연결을 암시한다.

 

2. 시대적 배경

유고슬라비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의 연방국가였지만, 1990년대 들어 민족주의와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등이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 과정에서 보스니아 내전(1992~1995), 크로아티아 전쟁, 코소보 분쟁 등 참혹한 내전이 벌어집니다. 마케도니아(현재의 북마케도니아)는 1991년 비교적 평화롭게 독립했지만, 국내에 거주하던 알바니아계 소수민족과의 긴장이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국경 지대에서 무력 충돌이 빈번했고, 알바니아계 주민의 독립 요구, 차별 문제, 무장 조직 활동 등이 사회 불안을 증폭시켰습니다. 영화는 슬라브계 마케도니아인(정교), 알바니아계 무슬림(이슬람)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현실이 담담하고도 충격적으로 그려집니다.

 

런던이 주요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며, 전쟁 사진가와 언론계 인물들을 통해 서구가 이 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줍니다. 서구의 일상은 평화롭지만, 발칸의 참혹한 현실과 단절된 듯한 모습은 전쟁과 폭력이 결코 먼 일이 아님을 경고합니다.

 

영화는 당시 유럽 한복판에서 벌어진 잔혹한 분쟁이 '역사의 반복'처럼 인간을 파괴하는 과정을 시간의 원형 구조로 은유합니다. '시간은 원이다(Time never dies. The circle is not round)'라는 문장은, 과거의 폭력이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지배하게 되는 순환 구조를 강조합니다. 이처럼 90년대 발칸반도의 민족주의, 분열, 폭력은 영화의 비극적 구조와 인간적 고뇌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3. 총평

이야기는 ‘말들 – 얼굴들 – 사진들’의 세 장으로 구성되며, 서로 다른 시공간을 오가면서도 하나의 주제와 인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마지막 장면이 첫 장면으로 되돌아가는 구조는, 전쟁과 증오, 죽음이 되풀이되는 인간의 역사를 형식적으로 드러냅니다. 영화는 전면적인 전투 장면 없이도, 총성과 죽음, 눈빛만으로 전쟁의 공포를 전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 자비가 어떻게 미움과 편견 속에서 무너지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며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줍니다.

 

시골 풍경과 폐허, 폭우 등은 모두 상징적 장치로 사용되며, 고요한 절제 속에 슬픔을 담은 영상미가 돋보입니다. 음악은 종교적이고 운명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키며, 감정을 지배합니다. '시간은 원이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폭력은 어떻게 시작되고, 왜 반복되는가, 사랑은 그 앞에서 무력한가와 같은 본질적 질문을 던집니다.

 

일반적인 선형 서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혼란스럽거나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민족분쟁이나 발칸반도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할 경우, 인물 간 갈등이나 정치적 배경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 포 더 레인'은 전쟁의 잔혹함, 민족 갈등, 사랑과 희생, 시간의 순환성을 깊이 있게 다룬 시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영화이며 마케도니아 감독 밀초 만체프스키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실험성과 감정적 호소력을 동시에 지닌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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