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여행 작가였던 에바는 현재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폐허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웃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어 수난을 겪고, 벽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집에서 홀로 지냅니다. 영화는 현재의 비참한 에바의 모습과 함께, 아들 케빈을 임신하고 낳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오버랩시키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바는 임신 초기부터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고, 케빈은 태어날 때부터 에바에게만 낯선 존재로 다가옵니다. 에바의 애정을 끊임없이 거부하고, 밤낮으로 울어 에바를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아빠인 '프랭클린'에게는 평범하고 착한 아이처럼 행동하며 에바를 더욱 고립시킵니다. 말을 배우는 시기에도 에바의 지시를 따르지 않다가, 프랭클린에게는 능숙하게 말하는 등 케빈의 기만적인 행동은 계속됩니다. 에바는 케빈의 악의적인 행동을 눈치채지만, 아무도 에바의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케빈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 대신, 정서적, 심리적으로 에바를 괴롭히는 방식을 택합니다. 예를 들어, 에바 앞에서만 냉소적인 표정을 짓거나, 에바가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리고, 에바가 키우는 애완동물을 죽이는 등의 잔인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케빈은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에바의 고통을 즐기며, 동시에 자신의 통제력을 시험합니다.
케빈의 악행은 여동생 셀리아에게도 향합니다. 케빈은 셀리아의 애완동물을 죽이고, 결국 셀리아가 한쪽 눈을 잃게 되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에바는 이 모든 것이 케빈의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직감하지만, 케빈은 여전히 교묘하게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사고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케빈의 위험성은 더욱 명확해지지만, 에바는 여전히 아무것도 막지 못합니다. 성장하면서 케빈의 폭력성은 점차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특히, 학교에서 양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활과 화살은 케빈의 잠재된 폭력성을 표출하는 도구가 됩니다. 케빈의 양궁 실력은 뛰어나고, 영화는 케빈이 양궁 연습을 하는 장면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암시합니다.
영화는 케빈이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에바가 집에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붉은 페인트로 뒤덮여 있고, 프랭클린과 셀리아가 살해당한 것을 발견합니다. 이후, 케빈이 학교 체육관에서 벌인 무차별 살인 사건이 밝혀지며 모든 파국이 절정에 이릅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후기: 한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의 불가능성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는 단순히 불량한 아이와 고통받는 엄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모성애라는 본능적인 감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타인을, 특히 가족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섬뜩하고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영화는 쾌활한 여행작가였던 에바(틸다 스윈튼)가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의 끔찍한 사건 이후 황폐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재와, 케빈을 임신하고 출산하며 키우는 과거를 교차하며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케빈은 에바에게 낯선 존재였습니다. 끊임없이 울고, 반항하고, 에바의 애정을 거부하는 어린 케빈의 모습은 관객들에게도 불편함을 안겨줍니다. "네가 태어나기 전엔 행복했었어"라고 외치는 에바의 절규는, 모성애가 당연히 존재하리라 믿었던 사회적 통념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충격적인 고백입니다. 케빈의 악의는 점차 교묘하고 영리한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완벽한 아들이지만, 에바에게만은 가차 없이 자신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에바는 케빈의 이상 행동을 남편(존 C. 라일리)에게 알리려 하지만, 케빈은 늘 한 발 앞서 에바를 고립시키고 무력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에바가 느끼는 절망감과 고통에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영화의 백미는 단연 틸다 스윈튼과 에즈라 밀러의 압도적인 연기입니다. 틸다 스윈튼은 아들에 대한 애증과 죄책감, 그리고 세상의 비난 속에서 무너져가는 에바의 복잡한 감정을 눈빛과 표정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냅니다. 에즈라 밀러가 연기한 청소년기의 케빈은 그저 악마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매혹적이고도 소름 끼치는 존재입니다. 그의 공허한 눈빛과 비릿한 미소는 관객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깁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단순히 범죄 스릴러로 소비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왜 케빈이 그렇게 되었는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유전적인 이유일까, 아니면 에바의 부족한 모성 때문일까? 영화는 대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으로도, 노력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간극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케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듭니다.
케빈이 마지막에 에바에게 던진 "엄마는 이제 알 것 같아요?"라는 질문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평생 케빈을 이해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실패한 에바, 그리고 그 실패를 지켜본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분명 쉽게 잊히지 않을 강렬한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실>의 또 다른 의미: 파국을 담은 공간에 대하여 (2) | 2025.08.12 |
---|---|
<아메리칸 울트라> 뇌에 칩 박은 쫄보 백수, 알고 보니 CIA 비밀병기?! (6) | 2025.08.12 |
<미씽: 사라진 여자>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시간 (7) | 2025.08.11 |
당신은 그를 믿습니까? 미스터리 스릴러 <분노> (7) | 2025.08.11 |
60년 전 미래를 상상하다~ 고전 SF 영화 <타임머신 (1960)> (9) | 2025.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