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 1997), 드라마, 멜로/로맨스

2025. 7. 30. 11:15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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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댈러웨이 부인' 줄거리

1923년 런던, 아름답고 화창한 여름날. 중년의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저녁에 열릴 상류층 사교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도시를 거닐며 꽃을 고르러 나섭니다. 그녀는 도시의 소음,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며 젊은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합니다.

 

이 날은 단순한 하루가 아닙니다. 클라리사에게는 인생의 여러 갈림길과 선택들이 떠오르는 날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피터 월시와 깊은 감정을 나눴지만, 결국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택하며 냉철한 정치인 리처드 댈러웨이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지, 만족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한때 사랑했던 피터가 오늘 런던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감정이 복잡하게 흔들립니다.

 

한편,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는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젊은 퇴역군인입니다. 셉티머스는 전쟁 중 전우 에반스를 잃고, 현실과 환각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아내 리치와 함께 런던 거리를 배회합니다. 사회는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들조차 그를 치료 대상이 아닌 병리 사례로만 봅니다. 점점 극단적인 감정으로 내몰린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클라리사는 파티를 열며, 정치계 인사들과 귀족들, 예전 연인 피터 월시, 친구 샐리 등 다양한 인물들과 다시 조우합니다. 피터는 아직도 클라리사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샐리는 그녀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성 친구로, 둘 사이에 있었던 감정도 회상됩니다.

 

파티 중, 셉티머스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들은 클라리사는 깊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 셉티머스를 통해 인생의 본질과 의미, 진실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삶이 과연 진정성 있는 것이었는지 되묻습니다.마지막 장면에서 클라리사는 피터와 눈을 마주치며 오랜 세월의 벽을 허무는 듯한 감정의 교류를 나눕니다. 짧지만 강렬한 그 순간은 그녀가 자신의 삶과 감정, 그리고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듯한 여운을 남깁니다.

 

2. 시대적 배경

영화는 전쟁이 끝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1923년 런던을 배경으로 합니다. 수많은 남성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고, 정신적 외상(PTSD)은 사회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셉티머스 스미스는 바로 이러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퇴역군인의 전형입니다. 그는 사회의 무관심과 오해 속에서 고통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영화는 영국 상류층의 생활이 주요 무대로 그려집니다. 클라리사는 귀족과 정치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사교계 여성으로, 그녀의 일상은 파티 준비와 손님 접대, 사회적 체면 유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이러한 겉모습과 달리, 감정의 억압과 과거의 선택에 대한 반성, 자유와 진정성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시 여성은 정치적, 사회적 발언권이 매우 제한되었고, 결혼과 가사, 품위를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1918년, 영국에서는 일정 연령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이 처음 부여되었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질서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클라리사, 샐리, 리치 등 여성 인물들은 이 전환기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기 역할과 자유를 탐색합니다. 소설과 영화 모두 모더니즘 문학의 전형으로, 전통적인 서사 구조 대신 의식의 흐름과 내면 독백을 통해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영화 속 시간은 단 하루이지만, 등장인물의 내면 시간은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단순한 사교계 여성의 하루를 그리는 듯하지만, 1920년대의 역사적 상처와 사회 구조, 계급 문제, 여성의 억압과 변화, 그리고 전쟁의 후유증을 모두 품은 깊은 시대적 배경 위에 세워져 있는 작품입니다.

 

3. 총평

'댈러웨이 부인'은 짧은 하루 동안의 겉보기엔 단조로운 일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 세계, 삶의 의미, 시간의 흐름을 깊이있게 조망하는 작품입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복잡한 감정과, 전쟁으로 무너진 한 젊은 남성의 비극을 교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삶과 죽음, 이성과 감성, 사회와 개인 사이의 균열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모더니즘적 서술 방식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시각적 이미지와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 감정의 깊이를 전달합니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연기한 클라리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감정의 흐름을 고요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해내며, 관객에게 삶의 본질에 대한 고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전쟁 후의 불안정한 시대, 억눌린 감정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선택과 포기, 후회와 수용의 의미를 되짚게 만드는 이 작품은 단순한 시대극이나 여성영화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담고 있습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담긴 인생의 깊이와, 선택의 무게를 묵직하게 사유하게 만드는 섬세한 내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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