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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피그말리온(Pygmalion, 1938), 코미디, 멜로/로맨스

by 모락모~락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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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그말리온' 줄거리

영화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시작됩니다. 꽃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소녀 엘라이자 둘리틀(Eliza Doolittle)은 우연히 언어학자 헨리 히긴스(Henry Higgins)와 마주칩니다. 히긴스는 엘라이자의 천한 억양과 말투를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아무리 낮은 신분의 사람이라도 올바른 언어교육만 받으면 귀부인처럼 말할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이에 히긴스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엘라이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하고 히긴스는 친구인 피커링 대령(Colonel Pickering)과 함께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철저하게 교육하기 시작합니다. 말투뿐 아니라 자세, 태도, 복장까지 모든 면에서 상류층 여성으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죠.  초기에는 엘라이자가 힘들어하고 히긴스의 냉소적인 태도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점차 실력을 키우며 변해가고 마침내 엘라이자는 상류층 인사들이 모이는 무도회에 참석해 모두가 그녀를 실제 귀부인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히긴스의 계획은 성공한 듯 보이죠. 그러나 무도회 이후, 엘라이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단지 히긴스의 '실험 대상'이었을 뿐인지, 아니면 자신이 진정으로 변화한 사람인지 고민에 빠집니다. 히긴스는 그녀의 감정에 무신경하게 굴며 여전히 그녀를 하인처럼 대하려 하지만, 엘라이자는 더 이상 그런 대우를 용납하지 않고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히긴스를 떠나려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히긴스가 엘라이자의 부재를 실감하며, 그녀를 단순한 실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2. 시대적 배경

당시 영국은 고도로 발달된 계급 사회였으며,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존재했습니다. 말투, 태도, 외모는 신분을 상징하는 요소였고, 특히 억양은 계급을 드러내는 가장 명확한 기준 중 하나였습니다. 작품은 바로 이 억양을 통해 계급 이동이 가능한지를 실험함으로써, 계급의 인위성과 위선을 드러냅니다. 산업혁명 이후 런던은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고, 도시 노동자 계급이 급증했습니다. 엘라이자처럼 도시 하층민들은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꽃을 팔거나 허드렛일을 해야 했는데 작품은 이런 하층민이 교육을 통해 '귀족화'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지며, 교육의 힘과 신분 이동 가능성을 주제로 삼습니다. 20세기 초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여성의 독립성과 사회 참여에 대한 의식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엘라이자의 자아 발견과 자립 의지는 당대 여성들이 겪던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언어학자인 히긴스가 말투 하나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려 하는 태도는, 당시 제국주의적 시선과도 연결됩니다. ‘표준 영어’가 곧 ‘문명화된 인간’의 상징이라는 생각은, 피지배자에게 ‘문명’을 가르친다는 제국주의의 논리와 유사합니다. 피그말리온은 당시 영국 사회의 계급 고정, 성차별, 교육 불평등 등의 문제를 반영하며, 이를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면 작품의 주제와 인물의 변화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총평

겉으로는 하류층 여성의 상류층 변신이라는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지만, 단순한 신분상승의 판타지로 흐르지 않습니다. 엘라이자는 단지 ‘귀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삶의 주체성을 찾는 여정을 겪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의 자립 문제와 맞물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히긴스와 엘라이자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 복잡한 감정선이 있으며, 두 주연 배우는 각각의 역할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특히 엘라이자의 변화 과정은 연기력 없이는 표현하기 힘든 폭넓은 감정선을 요구하며, 이는 영화의 핵심적인 감동 포인트입니다. 언어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테마입니다. 말투 하나로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는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기준들을 풍자합니다. 이 점에서 피그말리온은 사회 비판적 우화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대사 중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만큼 영화도 대사의 힘에 많이 의존하지만, 카메라 구도나 무대 배경 활용이 효과적이라 연극적이면서도 시네마틱한 매력을 살립니다. 무도회 장면이나 히긴스의 연구실 등은 영화적 연출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사람을 겉모습이나 말투로 판단하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영화는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며, 특히 교육과 사회적 이동, 자존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은 단순한 로맨스도 아니고 고전극도 아닌, 사회 풍자와 인간 드라마가 절묘하게 결합된 수작입니다.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한 인간이 ‘보이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품위 있게 담아낸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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