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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 질문에 20년째 답하는 영화, <봄날은 간다>

by 모락모~락 2025.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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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말이 담고 있는 가슴 시린 질문, 한 번쯤 읊조려 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2001년에 개봉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속을 스산하게 파고드는 영화, 바로 <봄날은 간다> 이야기입니다. 허진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이영애, 유지태 배우의 눈빛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이 영화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닌, 시간과 감정의 본질을 다룬 우리 시대의 고전입니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와 라디오 PD 은수(이영애)는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작업을 함께 하며 가까워집니다. 대나무 숲, 바닷가, 버스 안... 그들의 만남은 마치 녹음된 자연의 소리처럼 맑고 순수하게 시작되죠.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속도의 차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생각하는 순수한 청년 상우와, 한 번의 이혼 경험이 있고 자유로운 연애를 원하는 은수. 두 사람이 사랑에 대해 그리는 미래는 달랐습니다. 상우에게 사랑은 '소유'와 '영원'을 의미했지만, 은수에게 사랑은 '순간'과 '자유'였습니다.

 

이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 차이가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듯, 두 사람의 관계를 점차 삐걱거리게 만들죠. 상우가 묻는 그 절규 섞인 질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는 사랑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미련이자, 영원을 믿고 싶었던 모든 이들의 탄식입니다.

 

 

<봄날은 간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개의 아이콘이 있습니다.

  1. "라면 먹을래요?": 은수가 상우에게 건넨 이 도발적이면서도 설레는 한 마디는 사실 시나리오에 없던 애드립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원래는 "커피 한잔 할까요?"였지만, 배우와 감독의 논의 끝에 '라면'이라는 일상적이면서도 친밀감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바뀌었죠. 이는 두 사람이 빠르게 사랑에 빠지는 결정적인 순간을, 대사 한 줄로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2.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상우의 치매 할머니(백성희 분)가 상우를 위로하며 던지는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명대사입니다. 평생 바람난 남편(할아버지)을 기다려왔지만, 결국 그의 곁을 먼저 떠나는 할머니의 삶은, 사랑의 소멸과 집착, 그리고 체념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녀의 조언은 상우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한다'는 인생의 섭리를 가르쳐주죠.

은수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하던 상우. 그는 좌절과 고통 속에서 버려진 녹음테이프처럼 멈춰버린 시간을 살았지만, 결국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이별을 온전히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상우는 다시 녹음 장비를 들고 눈부신 보리밭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소리가 아닌, 바람 소리와 함께 자신을 담아내는 상우의 얼굴에는 비로소 잔잔한 미소가 번지죠. 이는 그가 은수의 시간을 벗어나 자신의 시간 속으로 다시 녹아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봄날은 간다. 하지만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는 더 깊고 성숙한 성장이라는 흔적이 남습니다. 사랑의 시작과 이별, 그리고 그 후의 성장을 경험해 본 분이라면, <봄날은 간다>를 통해 계절처럼 흘러가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다시 한번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 당신의 봄날은 지금 어디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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