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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중년에게 던지는 질문 <룸 넥스트 도어> 당신의 '존엄한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by 모락모~락 202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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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핵심은 마사(틸다 스윈튼)의 용기 있는 선택에 있습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전직 종군 기자 마사는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대신,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마지막을 통제하려 합니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존엄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아닙니다. 죽음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의지입니다. 마사는 좋아하는 책을 읽고, 정리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처리하며,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와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삶의 의미를 성찰해 온 그녀의 차분함과 의연함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마사의 오랜 친구 잉그리드(줄리안 무어). 잉그리드는 마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곁을 헌신적으로 지킵니다. 중년의 우정은 젊은 시절과는 다릅니다.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알고 있고, 인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 온 사이입니다. 잉그리드는 친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말리거나 외면하는 대신 그 결정을 존중하고 마지막까지 함께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흥미로운 장치가 등장합니다. 마사가 세상을 떠난 후, 마사의 딸 미쉘이 엄마의 집에 찾아오는데, 이 미쉘 역을 마사 역을 맡았던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으로 연기합니다. 이는 단순히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인식에 대한 깊은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잉그리드가 미쉘을 볼 때, 그녀는 독립된 개체인 미쉘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젊은 마사를 투영해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볼 때, 우리의 기억, 감정, 추억이 섞인 채 보게 됩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설정을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까지 건드리는 깊은 통찰을 보여줍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라는 두 연기 거장이 펼쳐내는 우정과 이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평소 외면하고 살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화려한 색감'의 대명사였던 알모도바르 감독이 이번에는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주제 앞에서 한층 성숙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중년에 접어든 우리는 스스로에게 절실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나는 마사처럼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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