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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폴링 스노우(Despite the Falling Snow, 2017), 멜로/로맨스, 스릴러, 드라마

by 모락모~락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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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링 스노우' 줄거리

1950년대 말, 소련 모스크바. 젊고 매혹적인 여성 카티야는 겉으로는 열정적인 공산당원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국을 위해 활동하는 비밀 스파이입니다. 그녀는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 가족을 잃은 후, 정권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임무는 소련 정부의 핵심 인물인 사샤라는 젊은 정치인의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습니다. 사샤는 이상주의적이고 깨끗한 성품의 소유자로,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카티야와의 만남 이후 그는 점점 그녀에게 매혹되고, 자신이 몸담은 체제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카티야 역시 처음엔 임무로 접근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샤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동시에 카티야는 미국으로 망명하자는 제안을 사샤에게 합니다. 사샤는 내심 흔들리지만, 카티야에 대한 감정과 점점 무너지는 체제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망명 계획을 실행하려던 날, 카티야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샤는 혼자 미국으로 탈출하게 되고, 카티야는 영영 모습을 감춥니다. 그녀의 실종은 사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그는 그녀가 배신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수십 년을 살아갑니다. 시간은 흘러 1992년, 뉴욕. 사샤는 지금은 성공한 미국 기업가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카티야에 대한 기억과 그녀의 실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조카 로렌은 화가로서 활동 중이며,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계기로 고모 카티야의 과거를 추적하게 됩니다. 로렌은 현지 기자 마리나와 함께 조사를 시작하고, 과거 카티야와 함께 일했던 조직원 중 한 명인 미샤를 찾아냅니다. 미샤는 한때 카티야의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스파이였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조사를 이어가며 로렌과 마리나는 점차 놀라운 진실을 파헤칩니다. 카티야는 사샤와의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그와 함께 떠날 계획이었지만, 미샤의 밀고로 인해 KGB에게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배신자가 아니라, 사샤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것이었습니다. 이 진실을 알게 된 사샤는 충격과 슬픔 속에서 다시 모스크바로 향하고, 미샤와 재회합니다. 과거를 뒤늦게나마 마주한 사샤는 카티야의 죽음을 애도하며, 평생을 괴롭혔던 고통과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2. 시대적 배경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후반의 소련 모스크바와 1990년대 초반의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시대를 교차하며 펼쳐집니다. 각각의 시대는 인물들의 삶과 운명,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시기의 소련은 스탈린 사망 이후 정치적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던 때이지만, 여전히 전체주의의 그림자와 KGB의 감시 체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공산당의 이념은 국민 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었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철저히 통제되었습니다. 당에 대한 충성은 시민의 의무였고, 의심받는 순간 체포나 처형도 불사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념을 따르지 않거나 외국 세력과 연관된 이들은 철저한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시민들은 감정과 신념조차 조심스레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억압 속에서 카티야는 외국 세력(미국)을 위해 활동하는 이중 스파이로 살아갑니다. 그녀의 스파이 활동은 단순한 정치적 임무를 넘어, 가족을 잃은 과거와 체제에 대한 분노로 비롯된 개인적 복수이자 저항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샤처럼 정직하고 이상주의적인 정치 엘리트는 이 체제 안에서도 신념을 지키려 하지만, 현실의 모순과 사랑을 통해 점차 내부로부터 무너져갑니다. 이는 냉전 시대의 소련이 단순한 강압적 체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변화와 혼란이 뒤섞인 과도기적인 시대였음을 반영합니다. 1990년대 초,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탄생한 직후였다. 국가 체제는 하루아침에 바뀌었지만, 혼란, 부패, 실업, 빈부격차 등 새로운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체제만 바뀌면서 사회 전반에는 정체성의 혼란과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러시아는 과거 공산주의와 냉전의 유산을 지닌 채, 새로운 자본주의로 급격히 이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왜곡하고, 과거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 회피, 침묵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등장하는 로렌과 마리나는 과거 세대의 비밀을 파헤치며, 부모 세대가 겪은 이념과 사랑의 대가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특히 로렌은 고모 카티야의 실종과 진실을 추적하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워졌던 인간적인 고통과 희생을 되살립니다.

3. 총평

'폴링 스노우'는 냉전 시대의 스파이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섬세한 로맨스와 역사적 비극을 절묘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단순한 첩보극이나 러브스토리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 신념, 배신, 희생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갈등을 시대적 억압 속에 풀어냅니다. 샤밈 샤리프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두 겹의 시간을 서사적으로 쌓아올립니다. 195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와 1990년대의 해방된 듯하지만 여전히 상처 입은 러시아의 모습은, 단순한 시대 배경이 아니라 기억과 진실의 미로를 형성합니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를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유려하게 보여주며, 이야기 구조는 점차 미스터리와 감정의 결말로 수렴됩니다.ㅍ레베카 퍼거슨은 카티야와 로렌, 두 인물을 1인 2역으로 소화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감정과 무게를 훌륭히 표현합니다. 특히 카티야 역에서는 이념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의 복합적인 내면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샘 리드가 연기한 사샤 역시 이상주의와 인간적인 갈등을 조화롭게 표현하며, 인물의 진심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영화의 영상미는 매우 회화적이며, 눈 내리는 모스크바의 차가운 색감과 뉴욕의 따뜻한 조명 대비는 감정의 온도를 시각적으로 뚜렷이 드러냅니다. ‘폴링 스노우(내리는 눈)’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기억의 휘발성과 사라져간 진실, 그리고 멈춰버린 사랑을 상징하는 정서적 장치로 활용됩니다. '폴링 스노우'는 차분하고 느린 호흡을 가진 영화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적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시대와 운명에 맞선 사랑의 이야기이자, 역사 속 진실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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